돌봄 사회, 주체는 과연 존재하는가?

관리자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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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율성과 주도권을 뺏는 치매 케어

사토 마사히코씨는 치매로 진단된 이후에도 일상생활을 누리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약속장소로 간다. 매일 메모장을 들여다보고 필요한 것들을 적는다. 타인에게 도와달라고 수시로 요구하며 자원봉사, 종교활동 등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한다.

치매에 걸렸어도 증세는 개인마다 다르다. 누구는 어떤 기능이 되고 다른 환자는 그 기능이 불가능하다. 자신의 일상을 지속하면서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 않게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주변에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느냐에 따라 치매의 진행 가능성이 매우 다르다. 우리의 의료체계는 치매라는 증세를 일률적으로 보고 개인의 자율성을 뺏는다. 환자 입장에서는 주도권을 잃는 일이며 결국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 치매라고 규정된다.

 

치매 환자의 가능성과 사회적 역할 찾아내기

탈시설화하고 있는 돌봄의 현장에서는 치매의 초기상태를 최대한 길게, 중증은 단기간으로 마지막에 감당할 수 있는 상태를 바람직하게 여긴다. 최근 치매 케어는 환자에게 남아있는 기능, 가능성을 발견해내는 일이 중요한 과업이다. 즉 환자에게서 고유의 사회적 역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한 예로 일본의 케어 매니저가 해낸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요양원 적응과정에서 어려움이 많던 한 어르신이 과거 기모노착의기능사이었다는 점에 착안해서 요양원 행사 때 입소 노인들에게 기모노를 입히는 역할을 줬더니 다 해내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 이 어르신은 일상생활 기능도 좋아져 요양원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 정착한 장기요양제도지만 개별적이고 인간적인 접근 부재

장기요양제도가 정착되면서 요양기관이 늘어나고 요양보호사들의 역할이 커졌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낮은 처우는 사회적으로 문제시되지 못한 채 저평가되어 왔다. 어르신 케어는 여자들의 일, 그 정도의 서비스라는 인식으로 지속되었다.

시각을 달리해 치매란 본능으로 돌아가는, 비문명화 과정으로 본다면 과연 그렇게도 두렵고 몹쓸 병일까? 케어의 질에 대한 개념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장기요양제도는 잘 정착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매우 의료적이고 정량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보험 수가 적용 편의를 위해 서비스 시간을 몰아놔서 효율성이 떨어지며 환자 보다는 제공자에 맞춰 짜여지는 것, 주간보호센터의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인 것이 단적인 예다. 개별 클라이언트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교육이 아쉽다. 앞으로 미래여성커리어 같이 돌봄감수성이 있는 교육기관이 종사자 역량강화 교육프로그램을 잘 설계해서 운영해주었으면 한다.

 

가족? 치매돌봄의 최선이 아니다

돌봄에 적합한 사람은 없다. 돌봄감수성이 떨어지더라도 돌봄의 부담은 여럿이 나눠야 한다. 비혼, 막내 등 돌봄감수성이 없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주수발자가 되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71세 비혼 자녀에 94세 치매 부모라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가족이라는 굴레는 애증을 낳고 감정적 소모, 심리적 부채관계가 이행되는 것, 어쩌면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 공적인 제도를 많이 이용해야 하고 제3자의 케어가 필요하다. 무한돌봄의 책임감과 죄책감, 그 수발자녀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당사자의 목소리가 이제부터 중요

일본 후쿠오카 오후타시의 복지기관에서는 가족요양+주간보호센타 이용 시간이 유연하게 설계되어 있다. 가족돌봄을 하다가 남은 시간에 언제든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주간보호 프로그램이 매우 단조롭다. 일본 도쿄의 마쓰다시에서 운영하는 한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치매환자에게 일거리 제공이 주요 서비스라 한다. 서비스 관리자 중심의 케어에서 서비스 대상자, 당사자 중심의 케어로 변화하려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관장의 특단의 결심과 개방적이고 유연한 마인드가 필요하다. 사토씨의 사례가 일반화될 수 없지만, 제도 개선을 위해 공청회에 참여하는 치매당사자의 목소리가 이제부터 중요하다. 자원봉사, 모금 등 당사자 활동의 기반이 되는 채널을 마련해야 한다. 사토씨가 혼자 생활이 가능한 것은 지역사회 내 민간단체, 비영리단체 등의 잘 짜여진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는 제도 중심의 접근이 강하고 민간영리기관의 난립으로 서비스의 질을 논하기 힘들다. 장기요양제도의 서비스 질을 논하고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생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기억하지 못해도 여전히 나는 나콜로키움 내용 재구성